광양에는 예로부터 광양을 대표하는 다양한 문화유적이 있다. 그 중에서 아름다운 유당공원, 오랜역사의 광양향교, 옥룡사지가 대표적이다.
1. 광양읍에 위치한 유당공원 문화유적
1547년 당시 광양현감 박세후에 의해 만들어진 유당공원은 광양읍 목성리에 있으며 팽나무, 이팝나무와 함께 수양버들이 많이 심어져서 ‘유당공원'(버들못)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1910년 경 나무가 많이 베어져서 울창하던 고목나무 숲이 많이 훼손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수 백년 묵은 고목나무 수 십 그루가 남아있어서 연못 풍경과 한데 어우러져 뛰어난 고전적 조경미를 보여주고 있다.
○ 풍수지리설, 향토수호정신 등 선인들의 지혜 깃든 곳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광양읍은 광양읍성을 중심으로 북방과 남방이 허하다 하여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국인 북방(칠성리)에는 일곱 개의 동산을 만들어 나무를 심는 한편 학이 나르는 형국인 남방에는 늪지대를 파서 연못을 만들고 주위에 나무를 심어 공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유당공원을 비롯하여 광양읍성 남방에 조성된 숲은 광양만에 자주 나타나서 노략질을 하던 왜구들로부터 읍성을 숨겨주는 역할을 하였으며, 봄 여름에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소금기 실은 바다 바람과 바닷물에 되쏘이는 따가운 햇빛을 막아주는 기능도 하였다.
○ 유당공원 이팝나무는 천연기념물 제235호
유당공원에 서있는 고목나무들은 한 그루 한 그루가 문화재 감이라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독특한 꽃을 피우며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이팝나무는 그 희귀성과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제235호)
이팝나무는 4월 말이면 초록빛 나뭇잎 위에 흰쌀밥을 뿌려놓은 것처럼 하얗게 꽃이 피어 이팝나무(이팝=이밥=흰쌀밥)라 부르고 있다. 유당공원 이팝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이팝나무 중 크기로는 네 번 째이지만 균형잡힌 몸매로는 단연 으뜸이다.
○ 연못과 고목나무 한데 어우러진 전통공원
대개의 공원이 높은 지대에 만들어진데 비하여 유당공원은 늪지대를 파서 만들었기 때문에 낮은 곳에 자리 해 있다.
그런데 이처럼 연못과 고목나무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고풍스런 멋을 지닌 경우는 전국 어디에서고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유당공원은 한마디로 연못과 고목나무가 한데 어우러진 한국식 전통공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공원입구 쪽이 현대식 화단형태로 볼품없이 조성되어 있어 유당공원의 전체적인 경관을 살리기 위해서는 앞으로 정비가 필요하다.
2. 광양향교
6백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광양향교는 광양읍 우산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1398년 경에 건립되어 조선시대 지방교육의 산실 역할을 하였다. 전통한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광양향교는 전라남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최초에 건립된 건물은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버렸고 1600년대 초기에 대성전을 다시 지은 것을 시작으로 연차적으로 건물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는 대성전, 풍화루, 명륜당, 재실, 교궁 등을 모두 갖추어 전통한옥으로써의 고풍스런 건축미를 한껏 보여주고 있다.
○ 향교는 성현에 대한 제례, 유학교육, 풍속순화 기능
향교는 조선시대에 지방재정에 의해 설치 운영된 중등 정도의 유학 교육기관으로 각 고을마다 세워졌고, 조선조 중엽까지 대성황을 이루었으나 이후 계속된 병란과 흉작, 서원의 속출로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많이 상실하였으며 1910년에는 일제의 학부령에 의해 공립학교에 흡수되었다. 향교에서는 성현에 대한 제사를 모시는 일, 소학 · 사서 · 오경 등을 가르치는 유학교육, 그리고 삼강행실록을 가르치는 풍속순화 기능을 겸하였다.
한편 광양향교는 1910년 공립학교에 흡수된 이후에도 유림에서 대표자(전교)를 뽑아 꾸준히 관리하여 오고 있으며 해마다 봄 가을로 성현에 대한 제례를 올리고 유림들의 집회와 강론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광양시에서는 1996년 부터 1998년까지 항교건물 일부와 담장, 축대, 통로, 화단 등 집 안팎을 대대적으로 정비하여 광양향교는 건물배치에서 부터 건물규모와 전통한옥으로써 멋스러움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지방향교 중 최고수준의 훌륭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
3. 옥룡사지
옥룡면 추산리 백계산의 동백림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옥룡사지는 신라시대 4대 고승(원효, 의상, 진표, 도선)중 한 사람이며, 한국 풍수의 원조인 도선국사가 35년 간을 머무르면서 수 백명의 제자를 길러내고 열반에 든 곳으로 불교역사에 있어서 매우 소중한 곳이다. 또한 옥룡사 일대를 백계동이라 부르는데 일명 ‘백학동’ 이라 하여 길지로 손꼽는다.
○ 도선국사 수 백 제자 기른 곳
도선국사는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827 ~ 898) 15세에 머리를 깍고 불교에 입문하였다.
이후 곡성 태안사에서 당시 우리 나라 선종의 대가인 혜철선사로 부터 불법을 배웠으며 뒤이어 전국을 돌며 지리를 익히며 수행하였다. 37세 되던 해에는 옥룡사에 들어와 도호를 “옥룡자”라 칭하고 35년간 머무르면서 수 백명의 제자를 길러내어 옥룡사파를 만들었으며 72세에 이 곳에서 입적하였다.
당시의 시대상황은 신라말기로 혼란기였는데 도선국사는 신라가 망하리라는 것과 고려건국이 가까워 오고 있음을 미리 예견하여 청년시절의 왕건에게 고려건국에 필요한 덕과 지략을 가르쳤다는 일화가 전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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