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고로쇠 약수 음식
피마자잎 나물, 취나물, 토란대 나물, 시래기된장국, 고로쇠 명태물, 깻잎된장장아찌, 갓김치, 고들빼기김치
광양 고사리
고사리나물
광양 못밥
도라지나물, 머윗대 나물, 미나리나물, 꽃게탕, 콩나물설치, 바지락 감자미역국, 갈치떼기 조림, 초피 열무김치, 꼬막장, 잔 조기구이, 오징어미나리회, 고구마대 김치
그 밖의 광양 봄 음식
도다리미역국, 비비추국(지부국), 밤뎅아게장, 돌게장, 벚굴과 벚굴구이
광양의 봄을 담은 고로쇠 약수 음식의 풍미
고로쇠 손님 접대용 음식, 광양의 음식문화로 굳어져
광양의 봄은 백운산에서부터 온다. 섬진강을 따라 불어온 봄바람이 잘 생긴 백운산을 감싸 안는다. 겨울과 맞서 꿋꿋했던 백운산의 기상도 부드러운 춘색에는 흐트러진다. 춘기를 머금은 고로쇠나무에도 서서히 수액이 돈다.
광양에는 다른 지방에는 없는 ‘고로쇠 약수 음식’이 있다. 매년 초봄이 되면 백운산 자락 마을마다 고로쇠 수액을 받았다. 이 고로쇠 수액을 마시기 위해 원근의 손님들이 1년에 한 번씩 잊지 않고 찾아왔다. 교통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시절. 이들은 보통 하루 이틀씩 머물면서 고로쇠 수액을 마셨다. 외지에서 찾아온 이들 ‘고로쇠 약수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만든 음식이 ‘광양 고로쇠 약수 음식’이다. 백운산 고로쇠 약수가 다른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광양의 독특한 음식 문화를 낳았다.
도선국사 흔적 선명한 고로쇠 약수 전설
백운산은 통일신라의 선승, 도선국사의 흔적이 짙다. 신라 말에 도선국사가 백운산 옥룡사에서 수도하였다. 하루는 가부좌를 풀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무릎이 펴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나뭇가지를 잡고 일어서려는데 그만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그런데 부러진 나뭇가지에서 물이 나오기에 그 물을 마셨더니 무릎이 펴지고 원기도 회복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물을 뼈에 좋은 물이라 하여 골리수(骨利水)라 불렀는데 이것이 오늘날 고로쇠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도선국사가 광양 옥룡사에서 수도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모든 전설이 그렇듯 영향력이 큰 인물이 머물렀던 곳은 그와 연관 된 뒷이야기가 남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민중들의 기억 속에 파편화 되어 남아서 민담과 설화의 형태로 간직되고 전해진다. 도선국사와 관련된 광양 고로쇠 약수 전설도 마찬가지다. 이 이야기를 단순한 옛날이야기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게 바로 그런 이유다. 매년 3월 경칩일을 기준으로 광양시가 백운산고로쇠 약수축제를 개최한다. 옥룡면 동곡리에 설치한 약수제단에서 전통의식 행사와 약수 제례를 시작으로 각종 행사를 진행한다.
돈이 귀했던 예전의 산골마을에서 고로쇠 손님의 방문은 현금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물론, 특별히 광고를 하거나 알리지 않았다. 당연히 장삿속이나 마케팅 개념은 없었다. 그래도 비교적 여유가 있는 외지인들이 광양 고로쇠의 명성을 듣고 해마다 꾸준히 찾아왔다.
1년 내내 준비하는 고로쇠 음식, 약수 마실 수 있도록 차게 만들어
예전에는 집집마다 군불을 지피고 가마솥에 밥을 하였다. 재래식 부엌에서 냉장고도 없이 음식 장만을 했다. 지금에 비하면 손님맞이가 어려운 환경이었다. 하지만 찾아오는 손님에게 최선을 다해 접대했다. 단지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 우리 동네 우리 집을 찾아온 손님은 환대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의식이 밑바탕에 있었다.
고로쇠 약수 음식을 차리기 위한 준비는 1년 전부터 시작된다. 약수 철이 끝나는 4월부터 여름내 다음 해의 약수 철을 맞이하기 위해 산에서 나는 봄나물을 채취한다. 취나물, 고사리, 두릅, 쑥, 쑥부쟁이, 누른대, 비비추(지부), 원추리, 쓴나물, 초피순(제피순)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 들판에서 방앗잎, 마늘쫑, 마늘 등 각종 식재료들을 거둬서 말리거나 장아찌로 만들어둔다.
가을이면 도라지, 더덕, 고들빼기, 총각무, 무청, 깻잎 등등의 재료로 밑반찬을 만든다. 겨울을 앞두고 김장을 할 때면 약수 손님 것은 따로 준비를 했다. 김장은 2월에 먹을 것과 3월에 먹을 것을 구분하여 묻어 두었다가 약수 철이 오면 손님상을 차렸다.
또한 숙박하는 손님을 위해 도배를 새로 하고 군불을 지펴서 방을 따뜻하게 해두었다. 방안 전체에 ‘굽지’라는 것도 바르고 방 문짝도 해마다 다시 새 종이로 바꿨다. 이런 일들을 하자면 무척 분주하다. 그런데 설을 쇠고 바로 약수철이 돌아오기 때문에 주부들은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래서 설 명절에 장만하는 김부각과 한과들을 넉넉히 장만해두었다가 약수 철에 쓰기도 하였다. 그러다보니 고로쇠 약수 음식은 설날과 대보름 음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기본적으로 고로쇠 약수에 밥을 지었다. 집에 따라, 또는 손님의 요청에 따라 별식이 추가되기도 했다. 닭을 약수에 넣어 가마솥으로 서너 시간 이상 푹 고아서 먹었다. 명태도 그렇게 꼭 삶아서 건져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명태를 삶아낸 약수 국물을 함께 마셨다. 고로쇠 약수 음식은 고로쇠를 마시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음식이라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김치나 반찬은 짜고 간간 하게 만들었다. 고로쇠 손님들은 정성껏 차린 고로쇠 음식과 고로쇠 물을 부지런히 먹고 마셨다. 아예 작정하고 찾아온 사람들다웠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땀을 흘려가며 화장실을 드나들면서 부지런히 음식과 약수를 즐겼다. 웬만한 손님은 하룻밤에 반말씩 마셨다.
고객층은 대체로 40~60 대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연령층이 많은 편이었다. 과거에는 보양이나 건강을 위해 고로쇠 약수를 찾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관광 차원에서 찾는 손님이 차츰 늘어나는 새로운 경향도 감지된다. 시골의 정취도 맛보고, 겸해서 세미나나 단체모임 등 행사도 치르는 고객이 생기고 있다. 이들은 약수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토종닭, 염소불고기, 닭불고기, 멧돼지구이 등 다양한 토속음식을 선호한다.
최근에는 약수 농가들이 거의 대부분 현대식으로 집 내부를 바꾸었다. 도시의 고객들도 택배로 주문해서 마시는 경우가 많아졌다. 통신과 택배 시스템이 발달했기 때문에 굳이 백운산 자락까지 찾아오지 않는 것이다. 이런 추세로 더 세월이 가면 광양의 고로쇠 약수 음식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을 고객이 아닌 내빈으로 여기고 정성을 다해 차렸던 그 정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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