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 부터 광양을 대표 특산품이 많이 전해 내려온다. 그중에 패도와 궁시가 유명하다. 또한 백운산 고로쇠와 다양한 과실과 원예작물이 있다.
1. 패도
은장도로 더욱 잘 알려진 패도는 고려시대부터 선비들과 부녀자들이 주로 사용하여 왔는데 광양 패도는 일찍이 명품으로 알려져 세종대왕도 광양 패도를 차고 다녔다고 전해온다.
패도 제작은 도제들에 의해 전승되어 오다가 근세 조선 말엽에 광양읍 칠성리에 살던 장익성 씨가 계승하였고 현재는 박용기 씨(중요 무형문화재 제60호) 부자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총 23단계의 공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패도는 칼날과 칼집, 칼손잡이로 연결되는 끝에 꽃무늬 장식을 하고 있으며 칼날은 주로 강철을, 칼자루나 칼집은 먹감나무, 대추나무, 매나무, 서각, 상아 등을 사용한다.
2 궁시(화살)
활은 선사시대부터 생활수단으로 개발되엇는데 전시 · 수렵 · 궁중연사 · 향음주례 등에 쓰였다. 현재는 스포츠화 되어 대중 스포츠로 자리잡기도 하고 장식용 또는 돌 잔치상에 놓아 건강하고 씩씩하게 성장하기를 바라고 가정을 지키는 행운의 상징으로도 쓰인다.
광양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해전 전승지 부근으로 예로 부터 국궁이 성행 하였는데 여기에 쓰이는 화살은 정교하고 섬세하며 성능이 우수하여 명중률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지방무형문화제 제12호인 궁시장 김기씨가 평생동안 전통화살 제작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곧은 시누대, 꿩깃, 화살촉 등을 소재로 하여 만드는 화살은 그 만드는 과정이 정교하여 자그마치 120회 이상의 손이 가는 작업 끝에 이루어 진다.
3. 백운산 고로쇠
신비의 약수로 널리 알려진 백운산 고로쇠는 백운산의 해발 600~900m 일대에 자생하는 고로쇠 나무에서 이른 봄인 경칩을 전후하여 채취하는 수액이다.
뼈에 이롭다 하여 일명 골리수라고도 불리는 고로쇠는 관절염 · 위장병 · 신경통 · 성인병 등에 효험이 있으며, 자당 · 마그네슘 · 칼슘 등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다는 성분분석 결과가 나왔다.
고로쇠 약수의 유래는 신라군에게 쫓기던 백제병사가 백운산에 이르러 고로쇠 나무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마시고 원기를 회복하여 다시 싸움에 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며, 통일신라시대 고승인 도선국사가 백운산에서 수 개월 간 가부좌하여 도를 닦은 후 일어서려 했으나 무릎이 펴지지 않아 나무가지를 붙들고 일어서는데 부러진 나무가지에서 떨어진 물을 마시자 곧바로 무릎이 펴졌다 하여 ‘골리수’라 부르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4. 밤 · 매실 · 작설차 · 원예작물
○ 천혜의 기후조건과 풍부한 물, 기름진 토질 갖춘 광양
백운산의 잘 삭은 토질, 섬진강의 맑은 물과 바다 안개, 따뜻한 기후와 높은 일조량 덕분에 광양지역에는 예로부터 작물이 잘 되었다.
특히 1930년대에 다압면 섬진마을에 살던 율산 김오천 선생에 의해 집단재배가 시작된 광양밤과 광양매실은 전국적으로 최고 상품의 명성을 얻고 있으며 생산량에 있어서도 밤은 전국 생산량의 8%, 매실은 10%에 이르고 있다.
밤은 광양 전 지역에 걸쳐 생산되고 있으며, 매실은 다압면과 진월면 섬진강변 쪽에서 집중적으로 재배하고 있다.
작설차 역시 다압면 섬진강 쪽의 백운산 자락에서 자생하고 있는 자연산 차나무에서 채취 제조되는 특산품으로 맛과 향이 뛰어나다.
이밖에도 미니수박, 머스크메론, 토마토, 오이 등 많은 원예작물이 맛과 질에서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아 전국의 소비자들로 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으며 특히 광양 신선오이는 일본까지 수출하고 있다.
○ 율산 김오천 영감님과 광양밤 · 매실
광양지역에는 물론 전국의 밤재배 지역에 “밤나무골 김영감님”으로 널리 알려진 율산 김오천님은 1902년 다압면 섬진마을에서 태어나 1988년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가정이 어려웠던 그는 17세 되던 1918년에 일본에 건너가 광산에서 13년간 광부생활을 하면서 돈을 모았다.
어느정도 돈이 모아지자 고향에 돌아와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다 어린시절 큰아버지께서 일러주시던 “사람은 사람을 속이지만 흙과 나무는 속이지 않는다”는 말씀을 떠올리고 농장경영 결심을 굳힌다.
그리하여 30세때인 1931년 밤나무 묘목 1만 그루와 매실나무 묘목 5천 그루를 배에 가득 싣고 들어와 3년동안 정성스럽게 가꾼다.
섬진강변 백운산 기슭에 밤나무와 매실나무 집단재배가 전국에서 최초로 시작된 것이다.
3년후 그는 나무재배 기술과 돈이 더 필요하게 되자 다시 일본에 건너가서 돈을 벌고 기술을 배우는 한편 틈틈히 고향을 오가면서 나무를 돌보다, 이렇게 10여년을 지내다가 1944년에 완전히 귀국하여 고향에 정착한다.
이후 김오천 영감님은 백운산 일대는 물론 섬진강 건너 지리산 일대에까지 밤산을 만드는데 필요한 밤나무 묘목과 기술을 전파하였다.
1960년대 초에는 마침 밤나무 전염병인 밤혹벌이 나타나 전국의 밤나무가 모두 죽어갔다. 그러나 김오천 님이 키운 밤나무는 해충에 강하여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매일 같이 밤나무 묘목이 전국각지로 한 트럭씩 실려나갔다. 이러한 공로로 김영감님은 1965년 정부로부터 산업훈장을 받았으며 1972년에는 광양지역의 뜻있는 분들이 힘을 모아 마을앞에 공적비를 세우고 율산이라는 아호를 지어드려 그 업적을 기렸다.
뿐만아니라 김오천 선생은 1952년 부터는 매실의 상품화에도 앞장서 해마다 매실 한약재인 오매와 금매 수십가마니를 만들어 구례, 하동, 순천 등지의 한약방에 공급하였으며, 매실농축액과 매실식초, 매실차 등 매실식품을 전통방식으로 만들어 널리 보급하였다.
한편 시아버지인 김오천 님으로 부터 매실식품 제조방법을 전수받은 며느리 홍쌍리씨는 1994년 청매실농원으로 매실전통식품 제조업 허가를 받는데 이어 1995년 우리나라 최초로 매실전통식품 지정을 받았으며 1997년 12월에는 매실 농축액으로 전통식품제조 명인 제14호로 지정받았다.
또한 다압면 매실재배 농가에서는 1995년 광양매실영농조합을 만들어서 매실식품 가공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1998년부터는 매실주인 “매진”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매년 3월이면 섬진강변 매화마을 일대에는 매화꽃이 만발하여 신춘맞이 관광객을 부르고 있으며 1997년 부터 매화축제가 개최 되고 있다.